문화유산에 생명 불어넣는 패션 디자이너들

패션 디자인에 문화유산의 요소를 접목하는 경향이 점점 더 인기를 끌고 있다. 이는 소재와 수공예 기법에서부터 전통적인 문양과 이미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일부 시도는 억지로 이루어져 오히려 문화유산 자체를 왜곡하는 경우도 있다.

디자이너 찐 빅 투이(가운데)는 베트남 실크의 가치를 탐구하고 보존하며 알리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사진: 본인 제공)
디자이너 찐 빅 투이(가운데)는 베트남 실크의 가치를 탐구하고 보존하며 알리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사진: 본인 제공)

인쇄 기술의 발전으로 전통 문화를 의류에 접목하는 일이 한층 쉬워졌다. 그러나 이러한 편리함은 디자이너들이 전통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지 않은 채 눈에 보이는 요소만을 차용할 경우, 공동체에 뿌리를 둔 가치가 문화적 맥락에서 분리될 위험도 높인다.

응우옌 티 타인 떰 베트남 문화유산보존지원기금 부이사장 겸 베트남 아오자이 유산클럽 회장은 “많은 이들이 유산 이미지를 단순히 장식 무늬로만 의류에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며, “전통 요소를 패션에 접목하는 것은 유산 홍보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충분한 연구 없이 변형할 경우 특히 종교적 신념이나 각 공동체의 고유한 특성과 관련된 문화적 의미가 왜곡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9월 초, 한 여성 가수가 자신의 신곡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영상에서 치마 하단에 피에우 스카프 무늬를 장식 요소로 사용한 의상을 입어 논란이 일었다. 피에우 장식용 천(khăn phiêu)는 전통적으로 타이족 여성들이 머리나 목에 두르며, 중요한 문화 의식과 연관되어 있다. 비판이 이어지자 해당 가수 측은 피에우 장식용 천이 등장하는 영상을 SNS에서 비공개 처리했다. 이와 유사하게, 지난 8월 말 북서부 전통직물 축제에서도 다오족 전통과 관련된 무늬와 색상을 부적절하게 사용한 의상들이 공개적으로 비판받았다.

수년 전에도 커우따오(Khau tao) 전통모자와 의식용 머리장식을 현대적으로 변형해 노출이 심한 의상과 함께 착용한 젊은이들이 지역사회로부터 큰 반발을 산 바 있다.

이러한 사례들은 문화적 요소를 디자인에 접목하기 전 그 기원과 사용 방식, 공동체 내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임을 보여준다. 유산에 진정으로 접근하는 디자이너들은 창작 과정의 출발점을 이미지 이면의 가치 탐구에서 찾는다.

디자이너 찐 빅 투이는 베트남 실크에 접근할 때 이 같은 방식을 택했다. 그는 냐싸, 반푹, 꼬찻 등 실크 생산 마을을 방문하고, 호이안으로 이동해 마쩌우 직조 기술을 배웠다. 처음에는 다양한 공예 마을의 실크를 탐구하고 실험하는 데 관심이 있었으나, 여행을 거듭할수록 각 천의 이면에 있는 사람들, 특히 평생을 빅 여성 장인들에게 더 큰 관심을 갖게 됐다. 투이는 “수공예의 가치를 높인다는 것은 곧 그것을 만드는 사람들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빅 투이는 ‘실크로드 위의 찐’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놋쩜(저음)’ 컬렉션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이 장기 프로젝트는 창의성, 수공예, 그리고 베트남의 역사와 전통 공예, 유산이 깃든 지역 간의 문화적 연결을 결합한다. 각 지역을 방문할 때마다 그는 현지 문화와 사람, 이야기를 탐구한 뒤 이를 실크 의상의 이미지와 무늬로 재해석한다. 2026년 초에는 럼동성 바오록을 찾아 실크 생산 시설을 견학하고, 생산 품질과 규모, 현대 시장과의 연계 가능성까지 폭넓게 조사했다.

디자이너 팜 응옥 아인 역시 창작의 출발점을 전통 소재 이면의 문화적 가치 탐구에서 찾는다. 그는 “각 소수민족은 고유의 문화적 특성, 신념, 색상, 무늬, 직조·자수·염색·채색 기법을 지니고 있다"며 "따라서 이를 적절히 사용하고, 제작자에 대한 존중을 위해 충분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신체의 부적절한 부위에 무늬를 배치하거나 신성시하는 부분을 건드리는 일은 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여 년간 스위스에서 환경과학을 공부하고 일하다 2016년 베트남으로 돌아온 응옥 아인은 라팜(La Pham) 브랜드를 설립했다. 지난 10년간 그는 지속가능한 패션을 추구하며, 전통직물 등 베트남 수공예 소재를 주요 디자인 요소로 삼아왔다. 이러한 소재의 특성이 그의 디자인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수작업 직조 원단은 독특하고, 폭이 좁으며, 질감과 색상도 다양하다. 완성까지 걸리는 시간은 계절, 날씨, 장인의 작업량에 따라 달라진다. 때로는 원단을 먼저 살펴보고, 장인이 어떻게 만들었는지 이해한 뒤에야 어떤 제품을 개발할지 결정한다. 응옥 아인은 “우리가 장인과 소재에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런던과 파리 패션위크에서 선보인 ‘마운틴 드림즈(Mountain dreams)’ 컬렉션에서 팜 응옥 아인은 파인애플 잎 섬유, 녹색 라미, 그리고 흐몽, 다오, 타이족이 만든 브로케이드 등 전통 소재를 사용했다. 이 소재들은 각 공동체의 무늬, 색상, 문화적 흔적을 담고 있어 디자이너가 그 기원과 제작 방식을 이해해야만 제대로 활용할 수 있다. 그에게 유산은 모든 창작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10년간 이 방식을 고수하며 베트남 54개 소수민족 중 약 6개 민족에 대해 심층 연구를 진행했다.

이러한 접근법은 디자이너가 유산 이면의 문화적 가치를 깊이 탐구할 때 유산이 창작 과정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무늬, 상징, 수공예 기법은 그것을 창조하고 지켜온 공동체의 문화적 맥락 안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장인 및 문화 실천가와의 협력과 교류는 디자이너가 잘못된 해석을 피하고, 전통 공예 보존과 실천자들의 추가 소득 창출에도 기여할 수 있다.

응우옌 티 타인 떰은 “유산이 패션 세계에 들어올 때 중요한 것은 주목받는 의상이나 제품의 수가 아니라 그 이면의 문화적 가치가 여전히 인식되고 전승되는지 여부”라며, “창의성은 유산의 본질적 가치를 훼손하지 않고 일상에 더 가깝게 다가갈 때 비로소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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