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찌민시는 1968년 구정(뗏) 대공세와 봉기에서 용감히 싸우다 목숨을 바친 731명의 전몰 장병 유해에 대한 추모식과 안장식을 호찌민시 순국선열묘지에서 엄숙하게 거행했다.
'작별의 길' 주변엔 흰 국화 줄지어
레티리엥 공원에서 호찌민시 순국선열묘지까지, 731명의 전몰 장병이 이동하는 길가에는 하얀 국화가 줄지어 놓였다. 이른 아침부터 수많은 시민들이 도로변에 모여들었다. 장병들의 운구 행렬이 천천히 지나가자, 많은 이들이 고개를 숙여 묵념하고 꽃을 들어 마지막 인사를 전하며,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위해 용감히 희생한 이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 그중에는 전쟁을 직접 겪은 참전용사들과, 자녀에게 이 특별한 귀향의 순간을 보여주기 위해 함께 나온 아버지들도 있었다. 어떤 이들은 업무를 조정하거나 일상적인 일을 미뤄가며, 한 번도 본 적 없는 장병들에게 작별을 고하기 위해 길가에 섰다.
오전 6시 30분, 고밥구에 거주하는 마이 호아 씨와 친구들은 이미 디엔비엔푸 로터리에서 모여 있었다. 레티리엥 공원에서 발견된 전몰 장병들을 위한 추모식과 안장식이 열린다는 소식에 근무 시간을 조정해 직접 배웅하기로 한 것이다. 그녀는 하얀 꽃을 든 시민들 사이로 운구 행렬이 지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수십 년이 지난 끝에 전몰 장병들이 마침내 베트남 국민의 마음과 기억 속으로 돌아오게 됐다”며 깊은 감동을 전했다.
빈타이 교차로에서는 푸억롱 고등학교 학생 응우옌 득 호앙과 반 친구들이 선생님의 인솔로 보응우옌잡 거리에서 전몰 장병들에게 작별 인사를 전했다. 평화가 찾아온 뒤 태어난 호앙은 책과 다큐멘터리, 그리고 윗세대의 증언을 통해 전쟁을 배웠다. 전몰 장병 유해 발굴 소식을 들으며, 수십 년간 많은 가족들이 감내해온 상실의 의미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됐다. 이번 작별의 순간은 그에게 자신의 세대가 공부하고 사회에 기여하며, 도시와 조국을 위해 봉사해야 할 책임을 다시금 일깨워주었다.
앞서 레티리엥 공원에서는 탄선동에 거주하는 응우옌 탄 하 씨가 중학교 3학년 딸과 함께 전몰 장병들에게 경의를 표했다. 그는 “아버지가 흥옌성 출신으로 1967년 남부 전선에 배치됐으나, 이동 중 부상을 입었다”며, 어릴 적부터 아버지에게서 같은 세대 전우들의 이야기를 들었고, 그중 많은 이들이 1968년 구정 대공세에서 전사했다고 전했다. 그는 “오늘의 평화가 얼마나 큰 희생의 대가로 이뤄졌는지 딸이 직접 보고 느끼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몰 영웅들이 마지막 안식처로 향하는 길목 곳곳에서는 누군가는 무료로 꽃을 나눠주고, 또 누군가는 길가에서 기다리는 이들을 위해 음료수를 준비했다. 호찌민시가 전몰 장병들에게 보내는 애틋한 마음은 이처럼 소박한 행동과 하얀 꽃, 그리고 묵묵한 경의의 인사 속에 담겨 있었다.
이름 없는 이들에게 바치는 약속
전몰장병 유해수습·신원확인 지휘위원회 위원장인 응우옌 만 끄엉 호찌민시 인민위원회 부위원장은, 추모식에서 전국 각지에서 사이공-자딘 전장으로 모여든 장병들의 모습을 회상했다.
어떤 이들은 꽌호 민요의 고장에서, 또 어떤 이들은 남부 베트남의 전통 가요인 봉코의 고장에서, 혹은 가난한 농촌의 민요를 가슴에 품고 전장에 나섰다.
그들은 농민, 노동자, 장인, 교사, 학생, 그리고 한창 나이의 청년들이었다. 서로 다른 지역에서 왔지만, 조국의 독립과 통일을 위해 전장에서 만났다. 많은 이들이 전사해 가족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고, 조국에 평화가 찾아오는 날을 보지 못한 채 돌아오지 못했다.
거의 6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이 장병들은 한때 도탄묘지였던 지금의 레티리엥 공원 지하에 남아 있었다. 그러다 올해 6월 23일부터 10월 5일까지, 호찌민시 사령부 산하 K74팀과 여러 부대가 협력해 731구의 전몰 장병 유해를 수습했다. 이 중 698구는 개별적으로, 33구는 8개의 집단 매장지에서 발굴됐다. 307구의 유해에서는 유품도 함께 발견됐다.
수십 년이 흐른 뒤 남은 것은 바랜 사진 한 장, 작은 약병, 빗, 반지, 목걸이, 물통, 고무 샌들 한 켤레 등 소박한 일상용품에 불과했다. 한때 장병들의 삶의 일부였던 이 물건들은 이제 수색팀이 증거를 모으고 기록을 대조하며 정보를 확인하는 데 남은 몇 안 되는 단서가 되고 있다.
발굴된 유해 대부분의 신원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한 구의 유해 뒤에는, 오랜 세월을 기다려온 가족과, 아직도 아들의 묘소를 모르는 고향이 있다.
추모식에서 응우옌 만 끄엉 부위원장은 “전쟁의 참혹함과 세월의 흐름으로 인해, 이번에 수습된 전몰 장병 대부분의 이름, 나이, 고향을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며 깊은 아쉬움을 표했다. 이어 호찌민시 당위원회와 당국, 시민을 대표해 고인들을 향해 “여러분이 어디에서 오셨든, 호찌민시를 평화로운 안식처로 여기시길 간절히 바란다”고 진심 어린 호소를 전했다.
이는 장병들의 유해가 발견됐지만, 가족의 품으로 완전히 돌아가는 여정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도시는 이들을 마지막 안식처로 맞이했지만, 이름과 고향, 그리고 여전히 기다리는 가족들은 앞으로 확인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시는 “전몰 장병 유해 수습·신원확인 500일 밤낮 작전”을 계속 추진할 방침이다. 관련 부대들은 유해가 매장됐을 가능성이 있는 지역, 특히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을 중심으로 조사를 확대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시는 전몰 장병 유해와 가족의 DNA 샘플을 채취해 분석·대조하고, 국가 유전자은행에 보관하는 작업도 지속할 계획이다. 세월이 흐르며 지형이 변하고 많은 흔적이 사라졌지만, 확인된 모든 정보가 누군가의 신원을 되찾을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끄엉 부위원장은 “앞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시와 관련 부대는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위해 희생한 장병들을 찾고, 가족과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어떤 기회와 방법도 놓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