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찌민시 중심가의 한 보석상에서 디자이너 마이 안(28세)은 단순히 아름다운 보석을 찾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녀는 판매원이 책임감 있게 채굴된 보석의 기원과 참파 문화유산에서 영감을 받은 컬렉션의 여정에 대해 설명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결국 그녀는 섬세한 팔찌를 선택했는데, 이는 단순히 디자인 때문만이 아니라, 그 팔찌에 담긴 이야기가 지속가능성과 문화적 발견을 중시하는 자신의 라이프스타일과 공명했기 때문이다.
마이 안의 선택과 구매는 새로운 소비자 트렌드의 뚜렷한 변화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제 소비자들은 단순히 기능이나 물질적 가치에만 의존하지 않고, 제품과 서비스의 개인화, 경험적 가치, 정체성을 더욱 중시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한 잔의 커피에서 개인의 정체성까지
라이프스타일 경제는 상품과 서비스의 가치가 단순한 기능이나 물질적 품질에만 국한되지 않고, 그들이 전달하는 의미, 경험, 감정, 정신적 가치에서 주로 창출되는 경제 모델이다. 이는 소비자가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형성하고 표현하며,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도록 돕는다.
이 경제에서는 소비자들이 단순히 소유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모습과 부합하는 제품에 기꺼이 비용을 지불한다. 실제로 많은 베트남 기업들이 이 모델에서 기회를 포착하고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레 찌 통 푸뉴언주얼리(PNJ) 대표이사는 “이제는 제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파는 시대로 전환해야 한다”며, “이야기는 반드시 역사와 사회에 뿌리를 두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변화는 단일 기업의 생존 문제를 넘어, 지역 경제 전반에 새로운 기회를 열어주고 있다.
딘 띠엔 민 호찌민시 경제대학교 부교수 역시 같은 견해를 밝혔다. 그는 “과거에는 단순히 잠을 깨기 위해 커피를 마셨다면, 이제는 커피 한 잔이 하루의 전문적인 시작을 알리고 긍정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상징이 됐다”고 말했다. 즉, 커피 한 잔이 정체성을 상징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라이프스타일 경제의 핵심은 소비자가 더 이상 단순히 기능만을 위해 제품을 구매하지 않고, 경험, 감정, 정신적 가치, 그리고 개인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방식을 중시한다는 점이다. 음식, 패션, 여행, 헬스케어 등 모든 분야에서 개인화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변화의 주된 동력으로 개성과 경험을 중시하는 젊은 세대, 특히 Z세대를 꼽는다. 여기에 베트남 중산층의 급성장도 결정적 요인이다. 글로벌 전략 컨설팅사 맥킨지(McKinsey)의 보고서에 따르면, 2035년까지 베트남 인구의 절반 이상이 중산층에 진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딘 띠엔 민 부교수는 “그 시점이 되면, 이 집단은 기본적인 생계 소비에서 라이프스타일을 확립하는 소비로 강하게 전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가 정책으로서의 라이프스타일
라이프스타일을 수십억 달러 규모의 수출 산업으로 성공적으로 전환한 선구적 사례는 바로 한국이다.
박상모 주베트남 한국문화원 행사문화팀장은 “대한민국은 1990년대부터 영화, K-팝, 한식 등 문화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해 왔다”며, “이들 분야가 확장되면서 정책적으로 제도화되고 ‘라이프스타일 경제’라는 개념에 포함됐다”고 설명했다.
성공의 핵심은 국가의 체계적인 개입에 있다. 대한민국은 콘텐츠 전담 기관을 설립해 아이디어 단계부터 수출까지 기업을 지원하고, 창의성을 육성하기 위한 예산을 별도로 배정했다. 한류 열풍 덕분에 한국식 라이프스타일 이미지는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었고, 이와 연계된 화장품, 패션, 식품 등 관련 제품에 대한 수요도 크게 증가했다.
실제로 2025년 1~3분기 화장품 수출액만 85억 2,000만 달러에 달했다. 관광지에서 한복(전통의상) 대여와 같은 소규모 서비스조차도 연간 수천억 원의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베트남의 경우, 호찌민시는 라이프스타일 경제를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을 수 있는 잠재력이 큰 지역으로 평가받는다. 젊고 역동적인 인구, 증가하는 소득, 빠른 트렌드 수용, 성숙해가는 창의적 기업 생태계 등 다양한 강점을 갖추고 있다. 전문가들은 ‘개인화 수요’가 핵심 요소이며, 호찌민시의 수요가 상당하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가장 큰 과제는 연결성 부족과 이를 뒷받침할 정책적 기반의 미비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6.2%가 진전을 위해서는 기업과 소비자의 공동 노력, 그리고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동시에 호찌민시에게 라이프스타일 경제 발전은 단순한 성장 채널을 넘어, 2030년까지 창의적이고 살기 좋은 도시로 도약하기 위한 핵심 열쇠이기도 하다. 이는 경제를 다각화하고, 서울·방콕·싱가포르와는 다른, 역동적이고 개방적이며 베트남만의 도시 정체성을 구축하며,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
결국 앞으로의 길은 혁신과 ‘이야기’를 전할 준비가 된 기업, 정신적 가치를 지지하는 안목 있는 소비자, 그리고 비전을 갖고 개방적 법적 틀과 산업 간 연결 플랫폼을 구축할 수 있는 당국 등 시스템 전반의 집단적 행동이 요구된다.
이 모든 요소가 맞물릴 때, 호찌민시를 비롯한 여러 지역은 자신들만의 라이프스타일을 강력한 경제 자원으로 전환해, 지역과 세계에 새로운 성공 스토리를 써 내려갈 수 있을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경험 경제는 되돌릴 수 없는 추세다. 인도에 본사를 둔 시장조사기관 와이즈가이(Wiseguy)의 연구에 따르면, 2035년까지 이 경제의 규모는 1조 2,000억 달러를 넘어설 전망이다. 이는 지역 문화 가치를 창의적으로 활용해 독특한 경험으로 전환할 줄 아는 창의적 도시들에게 황금 같은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