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경제국들은 이제 녹색 수소를 단순한 기후 해결책으로만 보지 않는다. 오히려 미래의 지정학적 영향력과 에너지 안보를 좌우할 핵심 전략 산업으로 인식하고 있다.
녹색 수소는 태양광, 풍력, 수력 등 100% 재생에너지로 생산된 전기를 이용해 물을 전기분해하여 만들어진다. 이 과정에서 온실가스(CO2)가 배출되지 않기 때문에 중공업 탈탄소화의 ‘황금 열쇠’로 널리 평가받고 있다.
세계가 녹색 수소를 필요로 하는 이유는 태양광과 풍력 발전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생에너지 전기만으로는 감축이 어려운 산업 분야에서 화석연료를 완전히 대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철강, 시멘트, 화학, 비료 생산 등 매우 높은 온도나 원료로서 수소가 필요한 산업이 포함된다. 또한, 녹색 수소는 대형 운송 분야에서도 필수적이다. 전기차 배터리는 승용차에는 적합하지만 대형 화물선, 항공기, 장거리 트럭에는 무게가 너무 무겁고 충전 시간이 지나치게 길다.
녹색 수소는 장기 에너지 저장의 해법도 제공한다. 풍력과 태양광 발전소에서 생산된 잉여 전기를 전기분해로 수소로 전환해 대규모 저장 시설에 보관했다가 야간이나 겨울철에 다시 전기로 변환해 사용할 수 있다.
녹색 수소 생산을 둘러싼 글로벌 경쟁은 세 개의 주요 블록이 각기 다른 전략을 펼치며 전개되고 있다.
녹색 수소 생산을 둘러싼 글로벌 경쟁은 세 개의 주요 블록이 각기 다른 전략을 펼치며 전개되고 있다. 중국은 현재 장비 공급망에서 가장 강력한 위치를 점하고 있으며, 대규모 제조를 통해 비용을 낮추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이는 과거 태양광 패널과 전기차에서 보여준 방식과 유사하다. 중국은 전해조 제조 능력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하며, 전 세계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제조 비용은 미국이나 유럽보다 3~4배 저렴한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은 신장 쿠차의 시노펙(Sinopec) 프로젝트 등 세계 최대 규모의 녹색 수소 시설을 지속적으로 가동하고 있으며, 방대한 태양광 자원을 활용해 국내 정유소에 수소를 공급하고 있다.
한편,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 등 획기적인 법안을 통해 강력한 재정 인센티브를 제공하며, 직접 보조금과 세액공제를 활용해 글로벌 투자를 유치하고 있다. 이 법은 녹색 수소 1kg당 최대 3달러의 생산 세액공제를 제공한다. 이러한 파격적인 지원 덕분에 미국은 녹색 수소 생산 비용이 세계에서 가장 낮은 국가가 되었고 유럽에서 미국으로의 투자 이동을 촉진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또한 수십억 달러를 투입해 연방 지원 수소 허브를 구축, 생산·유통·소비 인프라를 통합하고 있다.
반면, 유럽은 엄격한 규제가 적용되는 수요 중심 시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세계에서 녹색 수소 수요를 가장 강하게 견인하고 있지만, 높은 전기 요금으로 인해 국내 생산 확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EU는 중공업에 2030년까지 일정 비율의 녹색 수소 사용을 의무화하는 할당제를 도입했다. 그러나 제한된 토지와 불리한 재생에너지 자원으로 인해 충분한 국내 생산이 어렵다는 점을 인식하고, 북아프리카, 중동, 남미 등지에서 해저 파이프라인을 통해 수소를 수입하는 ‘수소 회랑’을 빠르게 구축하고 있다.
녹색 수소의 비용이 거의 전적으로 재생에너지 전기 가격에 달려 있기 때문에, 새로운 글로벌 에너지 지도가 형성되고 있다. 넓은 국토와 풍부한 일조량, 풍력 자원을 가진 국가들이 미래의 수출 허브로 부상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오만 등 중동 지역은 광활한 사막과 세계 최저 수준의 태양광 발전 비용을 활용해 NEOM 등 수십억 달러 규모의 메가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이들은 석유 수출국에서 녹색 수소 및 녹색 암모니아의 선도적 수출국으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호주는 일본과 대한민국 등 청정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두 경제권에 녹색 수소를 공급하는 주요 공급국이 되기 위해 노력 중이다. 한편, 칠레와 브라질 등 남미 국가들과 나미비아, 이집트 등 아프리카 국가들은 유럽으로부터 수십억 달러의 해외 직접 투자를 유치해, 액화 수소와 녹색 암모니아 수출을 위한 특화 항만을 개발하고 있다.
인도 역시 약 21억 달러 규모의 지원 패키지를 바탕으로 야심찬 국가 전략을 추진 중이다. 인도는 2030년까지 연간 500만 톤의 녹색 수소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이는 현재 전 세계 시장 규모의 약 5배에 해당한다.
중국과 인도는 전략적 목표는 다르지만 모두 녹색 수소를 에너지 안보와 지속가능한 경제 성장의 핵심 축으로 삼고 장기적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두 경제 대국이 글로벌 청정 에너지 지형을 꾸준히 재편하고 있는 것이다. 두 국가 모두 시장 개발을 주도하고 투자를 보증하며, 수요를 촉진하는 데 국가의 강력한 역할이 공통적으로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