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 참전 병사 일기 등 유족 품으로...미 프로젝트 가동

베트남전쟁 당시 참전 병사들의 일기와 편지 등을 찾을 수 있는 ‘베트남 전시 회계 이니셔티브(VWAI)’가 2026년부터 미국 정부의 지원 아래 베트남에서 시작된다. 이번 사업을 통해 전쟁 중에 확보된 기록물들이 처음으로 참전자 유족들에 대한 반환 등 인도적 목적으로 체계적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텍사스텍대학교 대표단이 참전 용사이자 부상 군인인 도쑤언투옌에게 서류를 전달하고 있다.
텍사스텍대학교 대표단이 참전 용사이자 부상 군인인 도쑤언투옌에게 서류를 전달하고 있다.

전장 문서와 미완의 일기장

쩐빈은 ‘쩐 루이(Tran Luy)’라는 서명이 적힌 종이를 만지며 말없이 잠시 멈췄다. 60년 인생에서 처음으로 아버지의 친필을 본 순간이었다. 그의 손에 들린 문서는 원본 유물이 아니라, 전장에서 압수된 뒤 50여 년 전 미군의 합동문서분석센터(CDEC)로 이관된 파일의 복사본이었다. 2025년 7월 10일 하노이에서 열린 전쟁 관련 문서 반환식에서, 마크 내퍼(Marc Knapper) 주베트남 미국대사가 그에게 이 복사본을 전달했다.

전사자 쩐 루이는 1969년 다낭에서 전사했을 당시, 그의 아들 빈은 겨우 네 살이었다. 전선으로 떠나며 사진 한 장, 유품 하나 남길 틈도 없었다. 빈에게 아버지의 모습은 어머니의 기억과 옛 전우들의 단편적인 이야기 속에만 존재했다.

가족은 15년 넘게 옛 전장을 찾아 헤맨 끝에 아버지의 유해를 고향으로 모셔와 재매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뿌리를 찾는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제 60세가 된 빈은 여전히 아버지의 본적지를 알지 못한다. 그는 “이번에 반환된 문서가 그 탐색을 이어갈 길잡이”라고 했다.

1954년부터 1975년까지 남부 베트남 각지의 전투 이후, 미군과 옛 사이공 정권은 수십만 건의 문서를 압수했다. 여기에는 일기, 친필 편지, 업무 일지, 인명 명단, 부대 지도 등이 포함됐다. 이 문서들은 CDEC로 이관되어 마이크로필름화 및 정보 분석에 활용됐고, 대부분의 원본은 이후 폐기됐다.

전쟁이 끝난 뒤, 이 아카이브는 미국으로 옮겨졌다. 현재 베트남센터 및 샘 존슨 베트남 아카이브(VNCA)에는 베트남 관련 자료 약 3천만 쪽이 보관되어 있으며, 이 중 26만 1천여 건이 CDEC 파일이다. 각 파일에는 이름, 부대, 위치, 압수 지점 좌표, 간략 보고서, 작전 기록 등 귀중한 정보가 담겨 있다.

CDEC F034602980541 파일은 프로젝트가 시작되며 최초로 공개된 문서 중 하나다. 이는 9사단 3연대 9대대 1중대 정치위원 후인 민 르엉의 72쪽 분량 노트로, 동남부 전장에서 활동한 기록이다. 일기는 1966년 8월부터 시작해 1967년 12월 6일, 1968년 구정공세를 앞두고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국도 13호선 인근 록닌–빈롱 지역에서 압수된 날로 끝난다.

1967년 11월 말~12월 초 부독(Bu Dop)에서 전사한 9대대 전사자 명단을 대조해보면, 같은해 12월 7일 전사한 벤쩨성 쩌우타인 출신의 후인 민 르엉(별명 로이)이 확인된다. 시기, 장소, 부대가 파일의 정보와 일치한다. 기록이 공개되자마자 많은 참전용사와 자원봉사자들이 유족 찾기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응우옌 티 호아(응에안성)는 2년전 아버지가 돌도 안 된 딸에게 남긴 글을 읽으며 벅찬 감정에 휩싸였다. 전사자 응우옌 꽝 소의 복원된 일기에는 “호아야, 내 딸아! 언젠가 조국이 통일되고 내가 돌아가면, 이 일기를 꼭 가져가마. 미국과 싸운 고된 나날 내 곁을 지켜준 일기다. 만약 내가 전사한다면(전쟁터에선 피할 수 없으니), 정치부에서 이 일기를 너에게 보내줄 것이다…”라고 적혀 있었다.

그는 1969년 2월 26일 전사했다. 2년 뒤 가족은 전사 통지서를 받았다. 사진도, 유품도 남지 않았던 가운데, CDEC 자료를 통해 복원된 일기는 그의 영혼의 한 조각이자 묘소를 찾는 소중한 단서가 되었다.

지난 3년간 40여 전사자 가족과 일부 생존 참전용사들이 반환된 파일을 받았다. 2026년부터는 미국 정부의 지원으로 VWAI 프로젝트가 확대된다. 단순 문서 반환을 넘어, 미확인 전사자 검증, 좌표 대조, 수색 협력, DNA 감식 등 전사자 신원 확인까지 지원할 예정이다.

전쟁 상처 치유하는 프로젝트

프로젝트 공동 책임자인 로널드 밀람 교수는 1970~1971년 미 82공수사단 1여단 소속으로 베트남에 참전했던 미국 참전용사다. 현재 텍사스텍대학교 평화갈등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반세기 넘는 세월이 흐른 뒤, 그는 이제 협력과 화해, 실종 베트남 군인 수색 지원, 전시 기록의 인도적 데이터화라는 새로운 사명으로 베트남을 찾았다. 그는 “어제 우리는 전장에서 서로 총부리를 겨눴지만, 오늘은 함께 앉아 전쟁의 이야기를 나누고, 희생자들을 기릴 수 있게 됐다”고 했다.

미국 정부가 VWAI 프로젝트를 공식 출범·지원하기 전인 2022년부터, 밀람 교수와 텍사스텍대 교수진·학생들은 ‘짜이 띰 응우어이 린(Trái tim Người lính, 병사의 마음)’ 단체와 함께 비영리 프로젝트 ‘베트남전 기록(Viet Nam War Records)’을 추진해왔다.

이 사업은 알렉스-타이 딘 보 박사가 수집한 전쟁 문서와 유품을 인수·반환하기 위해 증인 수색 및 검증을 협력하자는 제안에서 시작됐다.

공식 통계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약 18만 명의 전사자 유해가 아직 발견되지 않았고, 30만 구의 유해는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채 수습됐다. 한편 VNCA에 보관된 CDEC 파일 26만여 건도 아직 전수 검토되지 못했다.

VWAI 프로젝트 미디어 코디네이터이자 작가인 당 브엉 훙 대령은 “매일 한 건씩 파일을 공개해도, 현재 보유 자료를 모두 소개하려면 약 715년이 걸린다"며 "방대한 작업이지만, 각 파일이 한 가족에게 마지막 메시지, 사랑하는 이의 모습, 전사자 묘소의 단서가 될 수 있다”고 했다.

하노이에서 열린 문서 반환식에는 휠체어를 타고 수백 킬로미터를 달려 자신의 노트 복사본을 받으러온 80세의 상이용사 도 쑤언 투옌도 있었다. 그는 한 장 한 장 천천히 넘기며, 젊은 시절 자신이 남긴 글귀를 다시 읽었다. 마치 오랜 세월 잃어버린 신성한 기억의 조각을 손끝으로 더듬는 듯했다.

한때 전쟁의 도구였던 파일들이 이제는 깊은 인도주의적 사명을 수행하고 있다. 전사자에게 정체성을 되돌려주고, 가족에게 유품을 돌려주며,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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