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1회 베니스 비엔날레는 베트남 미술계에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베트남이 처음으로 공식 국가관을 마련해 '베트남: 세계적 흐름 속의 예술'라는 주제로 세계 최대 현대미술 중심지 중 하나인 베니스에서 전시를 개최한 것이다. 전시 공간은 베니스 도심에 위치한 역사적 건축물 Ca’ Faccanon에 마련됐다.
이번 행사에 참여한 히에우는 전통과 현대 예술 언어를 연결하려는 세대의 대표적인 예술가로 꼽힌다. 그의 창작 여정은 단기간의 성공이 아닌, 베트남의 역사, 유산, 문화적 소재에 대한 깊은 연구를 바탕으로 한 장기적 축적의 과정이었다.
그는 제61회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가하기 전에도 제11회 피렌체 비엔날레, 마이애미 아트 페어 위크, 2021년 베니스 Tesa 99 Arsenale Nord 전시 등 국제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2025년에는 “유네스코 유산 여정의 선구적 예술가”로 선정되어, 문화유산을 현대 예술에 접목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베트남 예술가로는 유일하게 개인전을 연 것은 그 자신에게 있어 중요한 이정표일 뿐 아니라, 앞으로 베트남 예술가들이 국제 예술 무대에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진출할 수 있는 선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히에우가 이번에 베니스 비엔날레 베트남관에서 선보이는 설치 작품 '땀(누에, Baco da seta)'은 시각적·개념적으로 전시의 중심을 이룬다. 이 작품은 5월 9일부터 11월 22일까지 전시되며, 전통과 역사, 현대적 삶의 요소들이 정교하게 얽힌 다층적 예술 구조로 선보인다.
'땀'의 특별함은 접근 방식에 있다. 히에우는 전쟁의 기억을 직접적으로 다루기보다는, 수천 년간 민족의 정신을 지탱해온 일상과 문화·신앙적 실천에 주목한다.
설치 공간은 관람객이 정해진 동선 없이 여러 공간을 자유롭게 이동하며 체험하는 여정으로 구성됐다. 신상을 모은 군집, 팔괘진, 중심의 집, 대형 옻칠화 등 다양한 공간을 거치며 작품을 감상하게 된다.
12점의 '수호신' 조각상은 전시 공간 곳곳에 배치되어 오행의 원소와 농경 생활에 밀접한 힘을 상징한다. 이들 조각상은 특정 인물이 아닌, 이름 없는 평범한 이들을 대표하며, 역사는 영웅만의 것이 아니라 수많은 세대의 조용한 축적의 결과임을 인문학적으로 조명한다.
작품의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는 누에의 형상이다. 누에의 생애(탄생-성장-실 뽑기-고치-나비)는 인간의 삶을 은유한다. 이는 헌신과, 조용히 떠나기 전 후세에 가치를 남기는 여정을 상징한다.
특히 히에우는 누에를 단순한 상징으로만 쓰지 않고, 실제로 작품 위에서 누에를 키운다. 이로써 '땀'은 살아있는 존재가 되어, 성장·변화·종결의 과정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예술은 더 이상 정적인 대상이 아니라, 생명의 흐름이자 역동적 과정이 된다.
또한 전통 소재인 잭프루트 나무, 누에고치, 옻칠, 금박, 달걀껍질을 사용함으로써 미적 의미뿐 아니라 문화적 깊이를 드러낸다. 전통 목재 처리법인 ‘홈닷’ 기법은 음양의 조화를 상징하며, 상반된 요소들이 조화를 이루어 안정된 상태를 만들어냄을 보여준다.
여정의 끝에는 대형 옻칠화(6.5m x 4m)가 있다. 이 작품은 베트남 건국 신화인 Âu Cơ의 100 개의 알’을 달걀껍질 소재로 재현한다. 이는 단순한 소재 선택을 넘어, 생성·해체·재생이라는 끝없는 순환, 오행(목-화-토-금-수: 나무-불-땅-금속-물)의 순환을 은유한다. 전시장에 설치된 스크린에서는 3D 영상이 상영되어 국제 관람객의 이해를 돕는다.
히에우는베니스 비엔날레에 처음 참가해 유일한 개인전을 연 소감을 묻는 질문에 "다시 살아난 느낌”이라는 특별한 단어를 선택했다.
그는 “중요한 이정표를 세운 기쁨뿐 아니라, 거의 10년간 멀게만 느껴졌던 꿈을 좇으며 쌓인 부담이 해소된 순간이었다"며 "이 여정은 결코 쉽지 않았고, 재정·시간·정신적 압박 등 수많은 도전이 있어 때로는 가장 가까운 이들조차 제 선택을 의심하기도 했다"고 했다.
'땀'은 10년에 가까운 연구, 실험, 선별의 결과다. 2017년 베니스 비엔날레를 참관한 이후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끊임없이 수정·재구성하며 최적의 형태를 찾아왔다.
창작과 병행해, 전통 공예 마을 탐방, 문화유적 조사, 역사·철학 서적 탐독 등 폭넓은 연구도 이어졌다. 모든 것은 베트남 문화의 깊은 본질에 다가가기 위한 단 하나의 목표를 위한 것이었다.
미술 평론가인 비토리오 스가르비 전 이탈리아 문화부 차관은 히에우의 개인전 '땀'에 대해 “이 설치 작품은 삶의 숨결과 전설·신앙·민속의 환상적 색채가 공존하는 가상 공간을 창조한다"며 "베트남 역사는 위대한 항전과 함께하지만, 히에우는 전쟁의 상처를 드러내기보다, 생산 노동과 신앙 실천 등 베트남인의 일상에 대한 서사적 접근을 택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는 결코 물러서지 않는 민족의 뿌리와 근원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