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2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석비에 따르면, 다오쑤옌 사원은 17세기 이전에 건립되었으며 수차례의 중수를 거쳤다. 대승불교 임제종에 속하는 이 사원은 한때 '다오쑤옌 조사 사찰'로 불렸는데, 이는 부처님뿐만 아니라 박닌에서 선문회를 창건한 원조 승려를 함께 모셨기 때문이다.
사원은 남동쪽을 향하고 있으며, 고대 베트남 사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건축 양식을 보여준다. 사찰 단지는 삼문, 전당, 본전, 양쪽 복도, 조상당, 석비각, 탑정원 등으로 구성되어 있어 예배 공간과 전통 경관이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사찰에 보존된 유물 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16세기에 제작된 천수천안 관음상으로, 2015년 국가보물로 지정됐다. 이는 하노이에서 막(Mạc) 왕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유일한 불상이다.
불상은 잭프루트 나무로 제작해 주칠과 금박으로 장식했으며, 높이는 1.32m이다. 육각형 연화좌대까지 포함하면 높이가 2.55m에 이른다. 앞쪽에는 42개의 큰 팔이 있고, 652개의 작은 팔이 여러 겹으로 배치돼 광배를 이루고 있어, 당시 베트남 불교 조각예술의 정교한 제작 기법을 보여준다. 특히 눈을 깊이감 있게 조각해 어느 각도에서 바라보더라도 불상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사찰에 보존된 유물들은 수세기에 걸친 사원의 형성과 변천을 증언한다. 불상, 석비, 고건축물의 보존은 사찰의 유형적 가치를 지키는 것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와 사찰을 잇는 문화적·정신적 공간을 유지하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건축적·예술적 가치 외에도, 다오쑤옌 사원은 혁명운동의 중요한 활동 무대로서의 의미도 지닌다. 1941년부터 1945년까지 이 사원은 당 중앙위원회와 북부지역 당위원회의 비밀 근거지로 활용됐으며, 자럼 구 당위원회의 비밀 본부와 혁명 간부 양성소로도 기능했다.
사찰 경내에는 적의 습격 시 간부들을 은신·보호하기 위한 비밀 지하벙커가 마련되어 있었다. 종교적 수행만을 위한 공간이었던 사찰이 민중의 혁명 투쟁을 품는 성지가 된 것이다.
다오쑤옌 사원의 주지인 틱 타인 꾸이 스님은 프랑스 식민지배에 맞선 저항전쟁 당시, 사원이 혁명 선전물 인쇄 및 배포의 거점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이 시기 사찰에서 이루어진 혁명 활동은 근거지 구축, 혁명 세력 보호 및 확장, 대중 동원에 기여하여 1945년 8월 혁명의 승리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미군에 맞선 저항전쟁 시기에는 방공-공군사령부의 지휘소로 선정되기도 했다.
과거 인쇄기가 설치되었던 공간은 현재 사원의 혁명 역사를 보여주는 사진과 문서를 전시하는 기념관으로 탈바꿈했다. 틱 통 티엣 고승은 프랑스에 맞선 저항전쟁 중 순국한 공로로 국가로부터 순국열사로 인정받았다.
1990년, 다오쑤옌 사원은 공식적으로 국가 건축·예술 유적으로 지정됐으며, 2011년에는 하노이시로부터 저항전쟁 시기 혁명사적지로 선정됐다.
즈엉 당 호아 밧짱 면 인민위원회 부위원장은 지역사회가 다오쑤옌 사원의 가치 보존과 계승을 항상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고 밝혔다.
면은 건축물과 유물 보호 외에도, 지역 주민의 유산 보존 책임 의식 제고에 힘쓰고 있다. 또한, 보존 및 홍보에 첨단 기술을 도입하여, 사원에는 QR코드가 부착된 안내판이 설치되어 주민과 방문객이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했다.
아울러, 천수천안 관음상, 고석비, 건축 구조, 예술적 세부 요소에 관한 자료는 2D 디지털화 방식으로 보존되고 있다. 이 데이터는 하노이 문화부문 디지털 도서관에 통합되어 정보 검색과 학술 연구를 지원하며, 장기적 보존의 기반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