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은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강점을 보유하고 있다. 무역 규모의 지속적 성장, 유리한 지리적 위치, 광범위한 자유무역협정(FTA) 네트워크, 안정적인 정치 환경 등은 베트남이 국제자본과 생산활동의 중심지로 부상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고 있다.
올해 1~8월 베트남의 총 수출입 규모는 약 7,700억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21% 증가했다. 이 같은 무역 규모는 베트남 경제가 글로벌 시장에 점점 더 깊이 통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공급망 이전 통해 도약 기회 맞은 베트남 기업
최근 기업금융매거진이 주최한 ‘글로벌 공급망 변화와 베트남 기업의 기회’ 포럼에서 응우옌 뚜언 비엣 VIETGO수출촉진유한책임회사 대표이사는 “이러한 이점들이 베트남 상품이 주요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중요한 기반”이라고 밝혔다. 또한, 이미 발효된 17개의 자유무역협정 네트워크가 베트남산 상품이 국제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더 넓은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고 했다.
이러한 강점은 베트남 내 국제 대기업의 존재감이 커지고 있다는 점에서 확인된다. 그러나 무역 성장의 이면에는 역설이 존재한다. 국내 기업의 글로벌 공급망 참여는 여전히 제한적이며, 공급망에 참여하는 중소기업 비율은 2009년 35%에서 2023년 18%로 감소했다. 반면, 수출에서 외국인직접투자(FDI) 부문의 비중은 여전히 높다.
이는 단순히 투자 유치 능력뿐 아니라 국내 기업이 이러한 기회를 연결하고 흡수할 수 있는 역량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베트남 기업이 단순 제품이나 부품 공급, 혹은 부가가치가 낮은 단계에만 머문다면 공급망 변화가 더 많은 주문과 일자리를 창출하더라도 경제의 질적 변화를 이끌기에는 부족하다.
현재 가장 큰 병목 현상 중 하나는 글로벌 공급망의 점점 높아지는 요구와 베트남 기업의 실제 역량 간의 격차다. 도 지에우 흐엉 베트남·세계경제연구원 전략정책센터 부원장은 “기업들은 가격과 품질 같은 전통적 기준뿐 아니라 ESG, 탄소, 데이터 등 새로운 기준까지 여러 층위의 기준에 직면해 있다”고 지적했다.
이 중에서도 ‘녹색전환’은 점점 더 명확한 요구로 자리 잡고 있다. 조사에 따르면, 기업의 48.7%가 녹색 전환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지만 64%는 이에 충분히 준비되어 있지 않다.
흐엉 부원장은 “인식과 행동의 간극이 좁혀지지 않으면 베트남 기업의 글로벌 공급망 참여에 장애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경을 넘는 생산 체인에서는 경쟁력 있는 가격으로 제품을 생산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품질, 환경, 데이터, 거버넌스, 추적성 등 점점 더 엄격해지는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전자산업의 실제 경험에 따르면, 대기업과 연결할 기회를 얻었을 때 베트남 기업은 역량을 점진적으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도 티 투이 흐엉 베트남 전자산업협회(VEIA) 부회장 겸 사무총장은 삼성 공급망에 참여하는 300여 개 국내 공급업체의 사례를 들며, 베트남 기업이 포장재 생산 등 단순 단계에서 점차 복잡한 부품의 설계·연구·개발 단계로 이동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변화는 공급망 참여가 궁극적 목적이 아니라 점차 더 높은 기술·지식·부가가치 단계로 이동하는 역량에 진정한 가치가 있음을 보여준다.
생산 역량과 더불어, 베트남 기업의 무역 접근 방식도 중요한 과제로 제기된다. 응우옌 뚜언 비엣 대표이사는 “싱가포르의 경험에서 보듯, 경제가 반드시 대규모 생산 역량을 갖추지 않아도 무역 강국이 될 수 있다”며, “핵심은 시장 수요를 파악하고 공급과 수요를 연결하며, 상품을 세계로 내보낼 수 있는 비즈니스 역량을 키우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관점에서 무역기업은 생산을 선도하는 개척자 역할을 할 수 있다. 공장은 설비 투자와 생산라인 전환에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무역기업은 시장 수요 변화에 더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 새로운 트렌드가 등장하면 기업은 신속히 적합한 공급원을 찾고 제조업체와 연결해 제품을 시장에 내놓을 수 있다.
이는 ‘틈새시장’ 전략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중소기업은 높은 기준과 치열한 경쟁이 있는 시장에만 집중하는 대신, 인도, 중동, 아프리카, 아세안 등 인구가 많은 시장에서 기회를 모색할 수 있다.
잠재력이 있는 품목군으로는 커피, 향신료, 건축자재, 섬유·의류, 플라스틱·종이·목재 등 소비재가 꼽힌다. 특히 전문가들은 커피가 성장 여력이 큰 품목군이 될 수 있으며, 계피·팔각·카다멈 등은 인도와 중동 등 인구 대국 시장에 진출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핵심은 특정 시장이나 제품을 선택하는 데 있지 않고 고객 수요에서 출발해 공급과 생산을 조직하는 시장 접근 방식을 바꾸는 데 있다. 이 방식은 기업이 단일 제품이나 고정된 생산라인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글로벌 무역의 급격한 변화에 더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다.
공급망에 더 깊이 진입할 수 있는 '트랙' 마련
공급망이 지속가능성, 디지털화, 고도 기술 요구로 이동하는 상황에서 인적자원이 베트남 기업의 성장 한계를 결정짓는다. 자동화와 로봇 기술의 급속한 발전은 노동력에 새로운 요구를 제기한다. 단순·반복 업무는 점점 기계로 대체될 위험이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근로자들은 직업 전환과 새로운 분야 적응에 대비해야 한다.
호앙 반 크엉 전 국회 재정예산위원회 위원 겸 교수는 “베트남은 이미 타국이 강점을 가진 하드웨어 생산 단계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인공지능, 제어 소프트웨어, 시스템 설계 등 고부가가치 분야에 인재 양성과 투자를 우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인적자원 개발 접근 방식의 중요한 전환을 의미한다. 단순히 ‘사용될’ 인재가 아니라 기술을 ‘흡수’하고 주도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적자원은 기존 프로그램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핵심 산업의 실질적 수요와 노동시장 변화에 맞춰 재편되어야 한다.
산업정책 측면에서 팜 반 꾸언 산업통상부 산업국 담당관은 “산업부는 새로운 메커니즘을 담은 ‘핵심산업법’을 마련 중이라며, ‘샌드박스’ 도입도 제안하고 있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500kV 변압기 시범 생산을 허용해 국내 기업이 첨단 제품을 실제로 시험·개선할 기회를 제공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고 했다.
이와 함께 ‘최소 시장’ 메커니즘도 구상 중이다. 일정 수준의 시장 수요를 보장해 기업이 기술에 장기 투자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기업의 자체 역량 강화만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실험하고 발전하며 점진적으로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새로운 접근법이다.
이와 관련해 호앙 반 크엉 교수는 투자 유치를 위한 ‘원스톱 서비스’ 모델을 제안했다. 이는 절차, 토지, 환경 등과 관련된 사안을 일괄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충분한 권한을 갖춘 창구를 마련하자는 것이다. 대규모 프로젝트의 경우, 정책 집행의 속도와 일관성이 특히 중요하다. 효과적인 조정 메커니즘은 투자 유치뿐 아니라 대형 프로젝트와 국내 기업 간의 연결도 촉진할 수 있다.
글로벌 공급망의 변화는 베트남이 세계 경제에서 위상을 높일 수 있는 ‘기회의 창’을 열고 있다. 그러나 이 창은 영원히 열려 있지 않으며, 지리·무역 통합·국제 대기업의 존재 등은 어디까지나 초기 조건에 불과하다. 결정적 요인은 베트남 기업의 내생적 역량이다.
생산 역량, 기술, 녹색기준, 고숙련 기술인력, 국제 시장 개척 능력 등 모든 고리가 강화되어야 한다. 특히 FDI 기업과 국내 기업 간의 연결은 단순 공급 관계에서 기술·설계·연구·개발 등 더 깊은 협력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아울러 ‘디지털 공급망 지도’ 구축은 FDI 기업의 요구와 국내 중소기업의 역량을 연결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 이를 통해 탐색 비용을 줄이고 직접 연결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궁극적 목표는 단순히 더 많은 신규 자본을 유치하는 것이 아니라 국제 대기업의 존재를 베트남 기업이 학습·역량 강화·성장할 수 있는 기회로 전환하는 것이다.
베트남은 공급망에 참여하는 경제에서 공급망 내 고부가가치 연결고리를 창출하고 주도할 수 있는 경제로 나아가야 한다. 따라서 글로벌 공급망 재편 속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더 많은 프로젝트를 유치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막 형성되고 있는 가치사슬에서 베트남 기업이 얼마나 멀리 나아갈 수 있느냐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