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철로 곳곳에 역사의 흔적을 새겨온 베트남 철도는, 현재 단계적인 전환을 거쳐 현대적이고 지능화된 통합 인프라 체계 구축을 지향하고 있다. 이를 통해 새로운 시대를 맞아 국가의 힘찬 도약에 대한 열망을 실현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철도산업의 탄생
베트남 철도산업은 1885년 7월 20일, 사이공 – 미토(Sài Gòn–Mỹ Tho) 노선에서 처음으로 기적 소리를 울리며 국가 교통망에 공식 등장하는 역사적 순간을 알렸다.
그로부터 약 15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베트남 철도는 식민지 시기, 두 차례의 저항 전쟁, 전후 복구 과정, 그리고 개혁, 개방과 국제 통합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영욕을 함께 해왔다.
사이공 – 미토 노선은 1881년 70km 구간에 총 사업비 약 1,200만 프랑 규모로 공식 착공됐다. 노선 양 끝의 사이공역과 미토역 등 두 개의 기점역 외에도, 2개의 주요 역, 11개의 간이역, 5개의 정차 지점을 포함해 총 18곳의 정차 시설이 설치됐다.
이 구간은 베트남은 물론 인도차이나 전역에서 최초로 건설된 철도 노선이자, 당시 프랑스 식민지 철도망 전체를 통틀어 두 번째로 개통된 노선이었다. 앞서 1879년 12월 15일부터 운영에 들어간 인도 폰디셰리(Pondichéry)의 약 13km 구간이 첫 번째 노선이었다.
사이공 – 미토 철도는 1882년 10월 30일 준공됐지만, 실제 운행이 시작된 것은 그로부터 3년 뒤인 1885년 7월 20일이었다. 이는 베트남 철도 산업 형성의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이후 1936년에는 남북을 잇는 베트남 종단 철도가 본격적으로 개통됐으며, 같은 해 9월 2일 하노이에서 내려온 철로와 사이공에서 올라온 철로가 당시 푸옌성 하오선지역, 하오선역 남쪽 약 1km 지점에서 연결되며 역사적 이정표를 세웠다.
50여 년이 지난 시점, 베트남 철도망은 총연장 약 2,600km에 이르며 전국 3개 지역을 관통하는 체계를 완성했다. 이는 초기 길이와 비교해 약 37배에 달하는 규모로, 당시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이르고 가장 체계적인 철도망으로 평가됐다. 이후 프랑스 철도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궤간 1m 철도가 베트남 전역에 걸쳐 건설됐다.
비록 베트남 철도의 형성과 발전이 프랑스 식민주의의 수탈 구조와 맞물려 진행됐고, 지배 세력의 침략과 통치 목적을 뒷받침하는 수단으로 활용된 측면이 있었지만, 첫 침목과 레일이 이 땅에 놓인 순간부터 철도는 베트남 노동자 세대의 땀과 노력, 나아가 피와 희생이 스며든 공간이었다. 그 결과 철도는 단순한 교통 수단을 넘어, 베트남 민족의 역사 그 자체를 증언하는 산물로 자리 잡게 됐다.
1881년 12월 27일, 사이공에서 쩌런으로 향하는 인도차이나 최초의 열차
1881년 12월 27일, 사이공에서 쩌런으로 향하는 인도차이나 최초의 열차
1881년 건설된 사이공역
1881년 건설된 사이공역
1927년 이전의 하노이역 전경(정면)
1927년 이전의 하노이역 전경(정면)
1904년 건설돼 사용에 들어간 베트남 종단 철도 노선상의 함롱교.
1904년 건설돼 사용에 들어간 베트남 종단 철도 노선상의 함롱교.
민족사의 산증인으로...
프랑스 식민주의에 맞선 항전 시기, 베트남 철도는 내외의 적과 싸우는 민족 해방 투쟁에 적극 참여했으며, 특히 남부에서 항전하는 군민 지원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1945년 말부터 1946년 초까지, 각지에서 출발한 부대들을 남부 전선으로 수송하기 위해 열차는 밤낮없이 분주히 오갔다. 붉은 바탕에 황금 별이 그려진 국기와 호찌민 주석의 초상, 그리고 ‘남부 항전 지지’, ‘베트남 독립’, ‘프랑스 식민주 타도’, ‘남부는 베트남의 땅’이라는 구호와 현수막을 내건 열차들은 남하 도중 여러 역에 정차하며 병력을 보충하고, 현지 주민들로부터 식량과 물자, 위문품을 전달받았다.
이른바 ‘남진’은 전국이 총동원돼 전선으로 나아간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하노이 – 냐짱 철도 노선의 주요 역과 열차들은 당시의 생생하고 장엄한 현장을 증언한다. 1945년 11월 이후, 국방부와 철도 당국은 수십 회에 걸쳐 열차를 편성해 수천 톤의 쌀과 4,000여 장의 담요, 8,000m2에 달하는 카키 천, 다량의 무기와 탄약을 전선 지역의 군과 주민들에게 수송했다.
북부와 중부 지역이 ‘남진’ 운동을 통해 제공한 인력 및 물자 지원과 시의적절한 정치적.정신적 격려는 남부 군민의 완강한 항전을 뒷받침하는 데 결정적인 힘이 됐다. 그 결과1946년 초 프랑스군은 북상 진격이 저지돼 중부 최남단에서 진격을 멈출 수밖에 없었고, 당초 계획했던 ‘속전속결’ 방식의 전국 장악은 실패했다. 북부와 중부의 철도는 항전 초기부터 끝까지 전선 지원 활동에 참여하며 각 전선에서 거둔 군민의 승리에 의미 있는 기여를 했다. 이는 철도가 인민과 혁명 정부의 소유가 된 이후, 조국을 위해 세운 베트남 철도의 대표적인 공적으로 평가된다.
1946년 10월 21일, 하이퐁 – 하노이 열차에 탑승한 호찌민 주석.
1946년 10월 21일, 하이퐁 – 하노이 열차에 탑승한 호찌민 주석.
1946년 10월 21일은 프랑스 방문을 마치고 5개월 만에 귀국한 호찌민 주석을 하이퐁에서 하노이까지 특별열차로 모신 날로, 베트남 철도 역사에 뜻깊은 이정표로 기록돼 있다. 중대한 책임을 깊이 인식한 철도 관계자들은 철도국 본부에서부터 각 역과 열차 현장에서 근무한 직원들에 이르기까지 관련 부처, 당 위원회, 지방 정부 및 주민들과 긴밀히 협력해 호찌민 주석과 당.국가의 여러 고위 지도자들을 수도 하노이까지 절대적인 안전과 계획에 따라 무사히 수송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
호찌민 주석은 철도 종사자들의 헌신과 높은 책임 의식에 화답하여, 1946년 11월 18일 감사와 치하의 뜻을 담은 서한을 보내며 감동적인 메시지를 남겼다. “철도 업무는 국가 건설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철도국 동지들이 언제나 단결하고 노력해 맡은 임무를 훌륭히 완수하기를 바랍니다.”
이 애정 어린 동시에 깊은 의미를 지닌 당부는 이후 국가 건설, 발전과 조국을 위한 헌신의 길에서 베트남 철도 전 부문의 지침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러한 자랑스러운 역사적 순간을 계기로 1946년 10월 21일은 베트남 철도 역사에서 특별한 기념일로 기억되고 있다. 여러 세대에 걸친 철도 종사자들의 정당한 염원을 반영해, 1996년 3월 11일 총리는 매년 10월 21일을 ‘베트남 철도의 날’로 지정했다. 이는 국가 건설과 수호 과정에서 철도가 이룩한 중대한 역할과 기여에 대한 공식적인 인정으로 평가된다.
프랑스 식민주의에 맞선 항전 시기 동안 베트남 철도는 시설과 인력 양 측면에서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도인들은 수많은 난관을 극복하며 현장을 지켜냈고, 전 민족과 함께 항전에 나서는 한편, 장차 철도 체계를 복구하기 위한 여건을 차근차근 준비해 나갔다.
1954년 7월 20일 제네바 협정 체결로 평화가 회복된 이후, 베트남 철도는 국가 복구와 재건 과정에서 또 하나의 기적을 만들어냈다. ‘신속한 개통, 우선 운행 후 보완’, ‘기존 자재와 현지 가용 자원의 최대 활용’, ‘복구를 중심으로 하되 개선 병행’이라는 방침 하에, 1954년부터 1957년까지, 4년만에 하노이 – 목남관(1955), 옌비엔 – 라오까이(1956), 반디엔–닌빈–함롱(1959) 등 주요 간선 철도 노선들이 완전히 복구됐다. 이 과정에서 철도 당국은 총연장 662km가 넘는 철도망을 신속히 인수.관리.운영하며 수억 톤의 화물과 수백만 명의 승객을 안전하게 수송했다. 이는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고 국가를 재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55년 12월 31일, 응우옌 반 쩐 베트남 교통우정부 장관이 하노이–남딘 철도 구간 개통식에서 테이프를 자르고 있다.
1955년 12월 31일, 응우옌 반 쩐 베트남 교통우정부 장관이 하노이–남딘 철도 구간 개통식에서 테이프를 자르고 있다.
1964년 12월 18일, 레탄응이 부총리와 교통운송부 및 철도총국 지도자들이 자럼 기관차 공장 노동자들이 제작한 응우옌 반 쪼이 명칭의 ‘뜨륵(Tự Lực)’ 기관차 준공식에서 테이프를 자르고 있다.
1964년 12월 18일, 레탄응이 부총리와 교통운송부 및 철도총국 지도자들이 자럼 기관차 공장 노동자들이 제작한 응우옌 반 쪼이 명칭의 ‘뜨륵(Tự Lực)’ 기관차 준공식에서 테이프를 자르고 있다.
청년 402 기관차 승무조는 ‘노동영웅’ 집단으로, 안전 운행과 연료 절감 분야에서 다수의 성과를 달성했다.
청년 402 기관차 승무조는 ‘노동영웅’ 집단으로, 안전 운행과 연료 절감 분야에서 다수의 성과를 달성했다.
굳건한 국가 건설의 길
1954년부터1964년까지 10년간 북부 지역의 철도망은 하노이 – 라오까이, 하노이 – 하이퐁, 하노이 – 랑선 등 주요 노선을 중심으로 건설되고 복구됐다. 이들 노선은 모두 핵심 간선으로, 전후 북부 지역의 이동 수요를 충족하고 경제 회복을 뒷받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같은 시기 총연장 57km의 하노이 – 타이응우옌 노선도 완공돼 북부 중부 산간 지역 철도망의 완성도를 한층 높였다. 특히 이 시기를 기점으로 철도 산업 기반이 점차 형성되기 시작했다. 비록 기술적 및 물적 여건에는 한계가 있었지만, 일부 전문 기술 분야를 중심으로 내부 수요를 충당할 수 있는 제품의 자체 생산이 가능해졌다. 그 대표적 사례가 자럼(Gia Lâm) 기관차 공장의 성장으로, 이는 훗날 베트남 철도 산업 발전의 중요한 토대를 마련했다.
미국의 대북 전쟁 파괴 행위에 맞서 북부를 지키고 남부 전선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철도 노동자들은 ‘모든 것을 전선으로’, ‘다리와 도로를 지키며 살고, 죽음 앞에서도 굴하지 않는다’, ‘적이 파괴하면 우리는 수리하고, 다시 나아간다’는 정신으로 철도 교통을 유지하기 위한 독창적인 창의성을 발휘했다. 이들은 홍강을 가로지르는 연합식 부교를 설치하고, 기관차와 차량을 은폐하기 위한 회전식 교량을 고안했으며, 이른바 ‘다리 없이 강을 건너고, 역 없이 열차를 운행한다’는 유명한 수송 방식을 창출해 단선.단일 수송 구조를 타파했다. 또한 남부 철도 구간과 ‘불의 전선’이라 불린 제4군구 지역에서는 궤도차를 활용한 수송을 조직해 ‘다리가 끊기면 뼈가 부러진 것 같고, 선로가 끊기면 창자가 끊어진 것과 같다’는 숭고한 혁명적 헌신을 보여주었다. 전투 의지는 ‘노래 소리로 폭음을 압도하자’는 운동을 통해 고양되었으며, 열차 운행을 지속하는 동시에 미군 항공기에 맞서 전투 태세를 갖추는 등 생산과 전투를 병행했다.
“베트남을 관통하는 남북 철도 노선이 공식적으로 다시 연결되여 국토가 하나로 이어진 날 이후, 전 민족의 단결 정신, 통일 의지와 미래를 향한 도약의 열망을 상징하는 강력한 표상이 됐다.”
모든 희생과 손실을 겪고, 철도 전 부문은 수백만 톤의 물자와 군수 장비, 수백만 명에 달하는 인민군 병사, 청년돌격대, 화선 민병대를 수송하며 남부 전선의 대미 항전을 최종 승리의 날까지 뒷받침했다. 조국 통일 이후에는 당과 국가의 주장을 실현하기 위해, 당 조직이 전 부문을 이끌어 극심한 어려움과 물자 부족을 극복하고 인적.물적 자원을 총동원해 헌신적으로 복구와 재건에 나섰다. 그 결과 교량 20km와 암거 520곳을 복구하고 신설하며, 철로 660km, 통신선 1,686km를 새로 부설했으며, 약 300만m3의 토사를 굴착하고 성토했다. 1976년 12월 31일에 총연장 1,729km에 이르는 통일 철도 노선이 공식적으로 준공됐다. 남북을 잇는 베트남 종단 철도는 다시 완전 개통되며, 국토가 하나로 이어진 이후 전 민족의 단결 정신과 통일 의지, 그리고 미래를 향한 도약의 열망을 상징하는 강력한 표상이 됐다.
개혁과 개방 속의 도약
개혁 및 개방 정책이 추진되던 시기, 철도 부문은 생산 조직 재편, 인프라 투자.개선, 현대적 수송 수단의 단계적 도입, 관리 메커니즘 개혁을 조기에 효과적으로 실행한 대표적인 분야 중 하나였다. 이를 통해 능동성과 창의성을 발휘하며 다수의 뛰어난 성과를 거두었다.
1990년 5월 1일에, 1955년 4월 6일자 정부령 제505호에 따라 설립되었던 철도총국은 교통운송부 결정 제575호에 따라 베트남철도연합으로 전환되었으며, 이는 새로운 경제 메커니즘에 부합하는 조직 모델의 출발점이 됐다.
수송 운영 효율을 제고하고 화물 인도, 인수 및 운송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베트남철도연합은 열차 운행 관리 방식과 조직 체계를 전면 재검토했다. 운행 관리는 단거리, 중거리, 장거리 노선으로 분권화되었고, 특히 장거리 화물 운송을 우선적으로 강화해 수송량과 수익 증대를 도모했다.
철도 부문의 중요한 개혁 목표 중 하나는 여객 서비스의 질적 향상이었다. 이를 위해 운행 시간 단축과 안전 확보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설비 현대화와 함께 직원들의 책임 의식과 승객 존중 문화를 강화했다. 하노이 – 하이퐁, 사이공 – 냐짱 노선을 중심으로 경량.고속의 쾌적한 여객 열차가 운행되기 시작했다.
능동적이고 창의적인 정신으로 베트남철도연합은 교량, 선로, 기관차, 객차의 개량을 추진하는 동시에 기술적 작업 공정의 합리화와 열차 운행 안전 관리 개선을 병행했다. 남북 통일 열차의 소요 시간은 복구 직후인 1976년 72시간에서 시작하여, 1988년 1월 60시간, 1989년 9월 48시간, 1991년 5월 42시간, 1993년 5월 38시간, 1994년 4월에는 36시간으로 단축됐다. 이는 운영 역량과 서비스 개선의 뚜렷한 성과를 보여준다.
1996~2000년 기간은 철도 산업이 비약적으로 성장한 시기로, 수송 실적과 매출 모두 인상적인 증가세를 기록했다. 환산 톤.킬로미터 기준 수송량은 연평균 6.48% 증가했고, 매출은 연평균 13.53%의 높은 성장률을 보였다. 특히 2000년에는 화물 수송량이 610만 톤을 넘어섰고, 총매출은 1조2,520억 동을 초과해 전년 대비 124.05%를 기록하며, 개혁 이후 2000년 기준으로 10년간 가장 높은 성장과 수익을 달성한 해로 평가된다.
특히 2000년 9월부터는 철도 차량 공장 소속 기술진과 노동자들이 공동 설계.제작한 고속열차 S1/S2와 S3/S4 두 쌍이 운행에 투입되면서, 서비스 품질 제고와 국민 이동 수요 증가에 대응하는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1995~2001년 약 7년간 수송 실적은 연평균 9.58% 증가했으며, 1995년에는 화물 수송 생산성이 17억 3,500만 톤.킬로미터에 달해 1990년 대비 두 배로 확대됐다. 철도 분야의 국제 협력도 지속적으로 확대됐다. 1996년 2월 14일, 베트남의 동당역과 라오까이역, 중국의 핑샹역과 선예우역에서 양국 정부와 철도 당국은 베트남–중국 국제 철도 연계 복구 기념식을 성대히 개최했다. 이어 1996년 5월, 필리핀에서 베트남철도는 ASEAN 철도기구에 공식 가입했다.
1995년부터 2001년까지 약 7년간 철도 수송 실적은 연평균 9.58% 증가했으며, 특히 1995년에는 화물 수송 생산성이 17억 3,500만 톤.킬로미터에 달해 1990년에 비해 두 배로 확대됐다.
1996년 2월 14일 오전, 중국에서 출발한 첫 열차가 랑선성 동당역에 도착했다. 이는 17년간 중단됐던 베트남–중국 철도 운행이 랑선과 라오까이 두 국경 관문에서 공식 복구되는 기념식에서 촬영된 장면이다. 사진: 베트남통신사
1996년 2월 14일 오전, 중국에서 출발한 첫 열차가 랑선성 동당역에 도착했다. 이는 17년간 중단됐던 베트남–중국 철도 운행이 랑선과 라오까이 두 국경 관문에서 공식 복구되는 기념식에서 촬영된 장면이다. 사진: 베트남통신사
열차 운행 시간 단축 목표는 신중하고 단계적인 경로에 따라, 무엇보다 안전을 최우선으로 보장하는 방향에서 지속적으로 추진됐다. 2000년 통일열차의 소요 시간은 32시간이었으며, 2005년에는 29시간 30분 수준에 도달해 안정적으로 유지됐다. 하노이–하이퐁 노선은 3시간에서 2시간으로, 하노이–라오까이 노선은 10시간에서 7시간 남짓으로, 하노이–동당 노선은 7시간에서 5시간 미만으로 단축됐다.
2003년 3월 4일에 정부 총리 결정 제34호에 따라 베트남철도연합을 기반으로 베트남철도총공사가 설립됐다. 총공사는 철도 운송 및 국내 및 국제 복합운송 사업을 수행하고, 국가 철도 인프라의 관리, 운영, 유지보수, 수리를 담당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이는 2003년 7월 1일부터 공식 운영에 들어갔다. 베트남철도연합을 베트남철도총공사로 전환하는 조직 개편 과정은 철도 산업 전반의 내부 관리 체계를 전면적으로 혁신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이를 통해 다품목 생산 및 경영을 확대하는 한편, 다원적 소유 구조를 도입하고 시장 메커니즘 속에서 자율적이고 공정한 경쟁에 적극 나서는 기반을 마련했다.
특히 2004년 5월에 베트남 사회주의공화국 국회는 ‘철도법’을 통과시켜, 이후 단계에서 철도 산업의 지속 가능한 발전과 전면적인 현대화를 추진하기 위한 견고한 법적 토대를 구축했다.
특히 2004년 5월에 베트남 사회주의공화국 국회는 ‘철도법’을 통과시켜, 이후 단계에서 철도 산업의 지속 가능한 발전과 전면적인 현대화를 추진하기 위한 견고한 법적 토대를 구축했다.
사고의 혁신
형성 초기부터 국토 수호를 위한 각 전쟁을 거쳐 평화 건설의 여정에 이르기까지, 철도 산업은 언제나 전선의 최전선에서 국가 경제 발전, 국방과 안보를 뒷받침하는 핵심 교통 수단으로 자리해 왔다. 그러나 수년간 철도 인프라는 세계 철도 발전 추세에 비해 뒤처져 왔으며, 낮은 수준의 인프라 구조를 통해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현재 전국 철도망의 약 85%가 단선으로 구성돼 있는 반면, 수송 능력은 제한적이고 시설은 노후화돼 체계적인 확충과 발전이 이뤄지지 못한 실정이다.
현재 베트남의 철도 궤간은 대부분 협궤(1,000mm)를 유지하고 있으며, 세계 다수 국가에서 이미 사용을 중단한 규격이다. 국내 열차 속도는 화물열차의 경우 시속 50~60km, 여객열차는 시속 80~90km 수준에 머물러 있다. 반면, 선진국에서는 여객 수송 평균 속도가 시속 150~200km에 달하며, 고속철도의 경우 시속 300km를 훨씬 웃도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철도 운송의 비중은 급격히 감소하여 전국 전체 수송 물량의 1~2%에 불과하다. 한편, 인프라 유지 및 보수에 배정되는 예산은 수요에 비해 상시적으로 부족해, 보수 과정에서 ‘임시방편식’ 조치가 반복되는 상황이다. 이러한 철도 산업의 한계와 문제점은 베트남 정치국이 2008년 9월 17일 발표한 ‘2020년까지의 철도 교통 발전 전략과 2050년 비전’(결론 제 27-KL/TW) 시행 10년을 총결산하는 과정에서 정부도 솔직히 인정했다.
2023년 2월 28일, 베트남 공산당 정치국은 ‘2030년까지의 베트남 철도 교통 발전 방향과 2045년 비전’에 관한 제49-KL/TW 결론을 발표했다. 해당 결론은 철도 운송의 위치와 역할, 중요성 및 필요성에 대해 정치 체계 전반의 인식을 통일한다는 관점을 분명히 했다.
이에 따라 현대적이고 동기화된 철도 교통 체계를 발전시켜 경제.사회 발전을 빠르고 지속 가능하게 촉진한다는 방향이 설정됐다. 철도 운송은 남북 경제 회랑을 비롯해 주요 동서 교통 회랑, 대도시 여객 수송에서 주도적 역할을 수행하도록 규정됐다. 이는 많은 장점을 지니고 있지만 혁신이 낙후된 철도 운송 부흥을 알리는 일종의 ‘신호탄’으로 평가된다.
당과 국가의 큰 관심과 더불어 경쟁력 강화를 위해 운영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현실적 요구에 부응하여, 베트남 철도 산업은 경영 패러다임을 전환했다. 기존의 ‘산업이 보유한 것’에 집중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시장과 사회, 국민이 필요로 하는 것’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사고를 전환한 것이다. 이는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창출하고 철도 산업의 이미지를 크게 변화시키는 강력한 도약의 계기로 평가된다.
베트남철도총공사의 2024년 생산 및 경영 과제 이행 회의에서 팜민찐 총리는 철도 산업의 변화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밝히는 한편, 철도를 핵심 교통 수단에 걸맞게 지속 가능하게 재도약시키고 발전시키고자 하는 기대를 표명했다.
“같은 자산, 같은 인력, 같은 제도와 정책이라 하더라도 새로운 방식과 사고, 그리고 관리 및 운영 방식의 변화를 통해 철도 산업의 품질과 효율은 뚜렷하게 달라졌습니다. 낡고 후진적인 기존의 사고방식을 과감히 버려야만, 오랫동안 발전이 중단된 어려움과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서비스 품질 제고와 ‘이용객 중심’ 원칙을 목표로, 최근 철도 산업은 여객 객차에 폐기물 처리 시스템을 설치했다. 더불어 승강장 개보수, 하노이역과 사이공역의 캐노피 설치, 하노이역 내 육교 건설 등에 투자해 왔다. 베트남철도총공사는 이와 함께 서비스 개선을 위한 다양한 조치를 동시다발적으로 추진하며, 보다 신선하고 현대적인 여객 운송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다. 특히 전자 발권 시스템에 과학기술을 적극 적용함으로써, 승객들은 언제 어디서나 다양한 결제 방식으로 편리하게 철도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됐다.
… 난관 극복과 도약
인상적인 변화 속에, 3년 연속 적자 이후2023년 베트남철도총공사는 약 1,000억 동에 가까운 흑자를 기록했다. 2024년에는 천재지변과 폭풍과 홍수의 큰 영향을 받았지만, 여객 수송(702만 명, 14.8% 증가)과 화물 수송(516만 톤, 11.2% 증가)에서 모두 계획을 초과 달성했다. 이는 총매출이 약 9조7천억 동에 이르는 긍정적인 실적으로 이어졌다.
새로운 발전 단계에 접어든 현재, 철도 산업의 사명은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는 데로 확장되고 있다. 철도는 여행객들이 각 지역의 자연경관과 문화, 역사적 가치를 탐색할 수 있도록 돕는 수단으로 자리매김하며, 국가 유산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여정으로 진화하고 있다.
서비스 상품 개발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은 철도 산업의 이미지와 브랜드를 변화시키는 성과로 이어졌다. 하노이 롱비엔역에서는 역사 일부를 개조해 ‘철도 카페’로 조성한 이후, 짧은 시간 안에 하노이 관광 지도에 이름을 올렸다. 또한 ‘각 노선마다 한 종류의 꽃, 각 역마다 하나의 목적지’를 표어로 내건 ‘철로 및 꽃길’ 운동은 세월의 흔적이 묻은 선로와 역 구역에 다채로운 색채의 새 옷을 입혔다.
지난 한 해 동안 베트남철도총공사는 관광객과 시민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은 다양한 신규 상품을 연이어 선보였다. 3월 말에는 ‘중부 유산을 잇다’를 테마로 한 고급 관광열차 SE19/20(후에 – 다낭)를 투입했다. 이 열차를 이용하는 승객들은 ‘천하제일의 웅관’으로 불리는 하이반 고개에서 인증 사진을 남길 수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만 중 하나로 꼽히는 랑꼬 만에서 일출과 일몰을 감상할 수 있다. 4월 중순에는 달랏–짜이맛 구간을 운행하는 ‘달랏 야간 여행’ 열차를 새롭게 개통해, 달랏의 밤 풍경을 색다르게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이는 베트남에서 유일하게 관광객을 대상으로 운행되는 톱니바퀴형 철도 노선이다. 이와 함께 여객열차 SE21/22도 사이공–다낭 노선에 투입하기 위해 개량되고 현대화됐다. 객차 내 화장실은 기존 1m에서 1.4m로 확장되고, 내부 인테리어는 전면 교체됐다. 기존의 4인 침대 객실 외에도 보다 사적인 공간을 원하는 승객을 위해 2인 침대 객실이 새롭게 마련됐다.
기획: 응우옌 응옥 타인
실행 및 조직: 호앙 녓
편집: 응우옌 반 또안
사진: 타인 닷, 철도 산업 자료, 베트남통신사